프레젠테이션의 본질은 무엇인가 – 20년 전 후배가 남긴 한 줄 평가
2004년, IT업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제일 잘한다는 평가를 한 후배에게 받았다. 손석희, 유시민과 같은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20년이 지나 그 후배는 광고회사 대표가 됐다. 그때 건넨 한 마디가 아직도 유효한 이유를 정리했다.

네이버를 뒤적이던 2004년 어느 날, 내 이름이 언급된 글 하나를 발견했다. 박현우. 그 이름을 나는 몰랐다. 명함을 받은 기억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은 꽤 진지했다.
“2004년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 — 프레젠테이션 전문가가 되겠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벤치마킹할 롤모델 여섯 명을 적어놨다. 방송인 손석희, 정치인 유시민, 종교인 오정현·전병욱·김동호. 그리고 첫 번째 이름. IT인, 오픈타이드 이영곤.
IT업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제일 잘한다 — 그 말의 무게
손석희, 유시민과 같은 리스트에 내 이름이 올랐다. 지금 생각해봐도 부담스러운 자리다. 그가 밝힌 공통점은 하나였다. 이 여섯 명은 모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구하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방송, 정치, 종교계 유명인들은 이미 영상과 자료가 넘쳐났다. 내가 그 리스트에 끼어든 건, IT업계에서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보고 분석하며 배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된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을 번역하면 발표가 아니라 설득이다
그 글을 보고 나는 댓글 대신 내 블로그에 짧은 글을 남겼다. 힌트 하나.
“프레젠테이션을 번역하면 발표가 아니라 설득이랍니다. 열정이 담겨있는 설득!”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한 줄은 바뀌지 않는다. 발표는 내가 무엇을 말했는가로 완성된다. 설득은 상대가 무엇을 결정했는가로 완성된다. 이 둘은 목적지가 완전히 다르다.
발표를 준비하는 사람은 자기 원고를 다듬는다. 설득을 준비하는 사람은 상대의 반론을 먼저 다듬는다. 1,200회가 넘는 강의와 수많은 제안 발표 심사 자리에서 확인한 것이 바로 이거다. 뛰어난 프레젠터는 발표 시작 전에 이미 고객이 어느 지점에서 의문을 가질지 알고 있다. 질문이 나오기 전에 답을 심어놓는다.
반대로, 발표는 유창한데 설득에 실패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순서로 자료를 짜놓는다. 고객이 궁금해할 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20년 후, 그 후배가 서 있는 자리
그 글을 계기로 박현우와 나는 연결이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PT 수업이 이루어졌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이후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고 들었다.
박현우는 지금 이노레드의 대표다. 광고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크리에이티브 리더 중 한 명이 됐다. 설득의 언어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어떻게 보면 2004년 그가 세운 목표의 완성형이다. PT의 달인이 된 것이다.
그가 2004년에 인터넷에 적어놓은 목표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관리하지 않는 계정이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20년째 인터넷 어딘가에 살아있는 그 짧은 글이, 어떤 경력증명서보다 더 정직한 평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잘한다고 말하는 것과, 지금 업계에서 자리 잡은 누군가가 20년 전부터 그렇게 봐왔다는 것 사이엔 무게 차이가 있다.
다음 발표를 준비한다면 이 질문부터 던져보길 권한다.
“이 발표가 끝난 뒤, 상대가 무엇을 다르게 결정하길 바라는가.”
이 답이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리 슬라이드가 화려해도 그건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다.
핵심 정리
- 프레젠테이션을 번역하면 발표가 아니라 설득이다. 발표는 내가 말한 것으로 끝나고, 설득은 상대의 결정이 바뀌었을 때 완성된다.
- PT 잘하는 강사 혹은 프레젠터는 다르다. 설득을 준비하는 사람은 자기 원고가 아닌 상대의 반론을 먼저 다듬는다.
- 20년 전 건넨 한 마디가 한 사람을 바꿨다. 설득의 본질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